'공기를 사는 날이 올까?' 공기청정기의 탄생은 인류의 '위기전조'

공기청정기 [사진제공 : 이미지투데이]
공기청정기 [사진제공 : 이미지투데이]

특허출원 : 전지집진기 (US1016476A)

연도 : 1911년

국가 : 미국

지역 :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Oakland)

이름 : Frederick Gardner Cottrell (페데릭 코트렐)

공중파 뉴스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해 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중국발 황사와 화학공장과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미세먼지 문제는 이제 우리 생활 깊숙이 온 상황. 때문에 가정에서도 실내 공기를 정화해주는 공기청정기를 필수 가전으로 구입하는 양상인데, 오늘 IP백과사전에서는 21세기 대기오염 문제를 상징하는 지식재산 ‘공기청정기’의 특허 역사를 알아보자.

‘물과 공기’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들이다. 항상 곁에 있고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어서, 수십 년 전만해도 ‘우리가 물을 사먹는 날이 올까?’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현재 물을 구매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번에는 ‘공기를 구매하는 날이 올까?’라는 질문한다면, 이제는 ‘충분히 가능하다’라는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그 날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공기를 정화해야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공기청정기가 바로 우리가 처한 심각한 위기를 상징하는 지식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기정화 필터 [사진제공 : 이미지투데이]
공기정화 필터 [사진제공 : 이미지투데이]

공기청정기 발명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공기를 정화하는 기술은 단순히 실내공기청정기를 위해 개발되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전, 다양한 이유로 ‘정화(Purify)’라는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우선 가장 큰 이유는 1차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의 본고장 영국에서는 19세기 노동력이 많은 런던 인근을 중심으로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살던 버킹엄 궁전 옆에도 커다란 모직공장이 있을 정도로 런던 곳곳에 고장이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공장에서는 석탄을 주 재료로 이용했기 때문에 공장 근처에 사는 사람은 시커먼 석탄 그을음과 아황산가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존 스캔하우스의 '소방관 가스 마스크' [사진제공 : Wikipedia]
존 스탠하우스의 '소방관 가스 마스크' [사진제공 : Wikipedia]

그리고 석탄은 가정에서도 많이 사용했다. 많은 가정에서 겨울철 난방 시스템으로 벽난로를 이용했는데, 석탄이 주 원료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한 화재도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당시 소방차가 없었고, 소방관이 불길에 뛰어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소방관과 일반 시민들을 위해 개발된 것이 ‘소방관용 가스 마스크’다.

초기 가스 마스크는 1854 년 스코틀랜드의 화학자 존 스텐 하우스 (John Stenhouse)에 의해 개발되었다. 그리고 아일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존 틴들(John Tyndall)이 연기와 악성 기체를 공기로부터 걸러내는 후드를 개발해 소방관의 호흡기 장치를 개선했다.

프레드릭 코트렐 박사의 '전기집진기' 특허 [사진제공 : Google patents]
Frederick Gardner Cottrell의 '전기집진기' 특허 [사진제공 : Google patents]

가스 마스크가 상용화 되면서 화재시 가스로부터 보호장비는 마련돠었지만, 근본적인 대기오염은 막을 길이 없었다. 영국을 비롯해 이미 우후죽순 산업혁명에 뛰어들던 선진국들에서는 도심을 황폐화시키는 석탄 화학 공장에서 나오는 이 매연을 해결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던 19세기 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의 과학자 프레드릭 코트렐 박사는 정전기를 이용하여 공기 중의 먼지를 걸러 내는 전기집진기(Electrostatic Precipitator)를 발명한다. 이 기술은 화력발전소의 굴뚝에 부착하여 잡아내기 힘든 초고열의 미세한 연기 입자들을 걸러내는 성능을 가졌다. ‘전기집진기’ 기술은 공기청정기의 효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이후 여러 공기를 정화하는 기기에 사용되었다.

이후 ‘공기 정화’에 또 한 번 큰 혁신이 일어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의미하는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을 계기로 일어났다. 1914부터 1918년까지 이어졌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과 유럽 열강은 앞다퉈 군비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조지 카셔의 'HEPA 필터' 특허 [사진제공 : Google patents]
George T Cartier의 'HEPA 필터' 특허 [사진제공 : Google patents]

특히 전쟁을 통해 일약 세계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경우, 소모적인 군비 경쟁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다. 이런 배경으로 원자폭탄의 개발이 논의된 것이다. 물론 반대가 매우 심했다.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생기는 방사능 분진 확산이 유력해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폭탄을 불발, 사고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고, 실제 방사능 공장 내에서 일하는 근무자들을 위해서라도 엄격한 수준의 공기정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렇게해서 개발된 것이 바로 ‘해파(HEPA)’ 필터다. 해파(HEPA)는 '고효율 분진 공기(High Efficiency Particulate Air)'라는 뜻으로 각 단어의 첫음을 따 만든 줄임말이다. 쉽게 말해 종이같은 수많은 주름 필터가 여러 겹을 이뤄 수많은 유해한 입자를 걸러내는 필터를 말한다. HEPA 필터는 효율성이 높은 공기 필터로 1950년대 각종 공기청정 필터로 상용화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의미의 공기청정기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20세기 초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들의 산업양상이 변하면서 공기청정기 수요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빌딩이 늘어나고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대기오염도 심각한 수준까지 올랐다. 청정공간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가전제품 산업에는 공기청정기 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의 'Air filtration system' 특허 [사진제공 : Google patents]
Ronald H. Deibert의 'Air filtration system' 특허 [사진제공 : Google patents]

이미 개발되어 있던 전기집진기와 해파 필터의 성능을 이용해 공기청정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우주항공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며 경제성이 좋은 고성능 필터의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초기 공기청정기는 우선 규모있는 건물의 건축과정에 함께 지어졌다. 1996년 특허출원된 Air A Medic Corp사의 연구원 Ronald H. Deibert의 특허 ‘Air filtration system’을 보면 우리가 흔히 회사건물에서 볼 수 있는 환기구 모양의 철제 각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각통 중간에 공기정화 필터를 설치한 모습으로 설계되었다. 설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회사단위의 규모에서만 가능한 시스템이다.

근무지에서 쾌적한 환경이 이루어지자 일반 가정에서도 공기청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모든 가정에 공기 필터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생산성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가정용 공기청정기는 건축물에 함께 설비 제작되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상품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Marron Hak의 'Air Purifier' 특허 [사진제공 : Google patents]
Marron Hak의 'Air Purifier' 특허 [사진제공 : Google patents]

별도의 설비제작 없이 휴대성이 좋고 콘센트에 전원만 연결하면 되는 형태의 공기청정기가 처음으로 개발된 것이다. 관련 특허로는 Hamilton Beach Brands Inc의 연구원인 Marron Hak의 2000년 ‘Air purifier’ 특허가 있다. 이후 가정용 실내 공기청정기는 다양한 필터 기능을 동반해 지금까지 개발되고 있다.

현재 시장에 출시되고 있는 실내 공기청정기의 필터링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필터식 공기청정기는 돌아가는 팬을 이용해 공기를 흡입한 후, 필터로 정화하여 정화된 공기를 다시 배출하는 방식이다. 들어온 공기는 해파 필터를 통해 걸러지고, 냄새는 활성탄을 이용해 흡착한다. 최근에는 해파보다 한 단계 성능이 좋은 ULPA 필터를 사용하는 모델도 있다.

다음으로 이온식 공기청정기는 일정한 거리를 띄워 둔 전극에 고전압을 흘려 공중에 이온을 방출시켜 공기 중의 미립자에 부착시키고, +극의 집진판에 끌어당겨 입자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소비 전력이 적고 조용하다는 것이 장점이 있다. 단점은 공기정화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고 넓은 공간에서는 효과가 떨어진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로 산소 분자와 합쳐져 오존 분자를 만들기도 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가정용 실내 공기청정기 [사진제공 :  이미지투데이]
가정용 실내 공기청정기 [사진제공 : 이미지투데이]

마지막으로 전기집진식 공기청정기는 이온식과 같이 전기적인 방전 원리를 이용한 방식이다. 강력한 집진력을 가진 집진판으로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는데, 다른 용어로 무필터 정화기, 또는 음이온 정화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온식과는 달리 팬이 같이 사용되며, 유지비용이 적고, 미세먼지가 많은 곳에서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먼지를 흡착하는 효율은 HEPA필터에 비해 좋지 않다. 또한 본체 내부도 쉽게 더러워지기 때문에 주기적인 청소가 필요하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우리나라는 중국발 황사 또는 미세먼지 농도로 인해 항상 공기청정에 대해 민감하다. 때문에 많은 신축 아파트나 오피스텔에도 기본 옵션으로 공기청정기가 설치되는 상황이다. 인류의 긴 역사 동안 공기청정기 필요성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짧은 공기청정기의 역사는 현재 지구의 대기오염 심각성을 알려주는 반면교사라고 볼 수 있다. 부디 기후협약을 잘 지켜 인류가 ‘공기를 구입하는 날’이 오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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